평산의 낚시터에세이(40) - 無爲自然과 선비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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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귀섭 작성일 조회 : 1,876회 댓글 : 0건 20-07-02 11:50본문
평산의 釣行隨想(40) - 釣仙의 道
無爲自然과 선비낚시
평산 송 귀 섭
FTV 제작위원
(주)아피스 홍보이사, 체리피시 자문위원
<붕어낚시 첫걸음> <붕어 대물낚시> <붕어학개론> 저자
현: FTV <釣樂無極> 프로그램 진행, 낚시춘추 <한 뼘 다가가는 붕어낚시> 연재 중
전설속의 신선(神仙)은 하얀 도포(道袍)에 긴 백발의 모습으로 기암꼭대기에 올라 도(道)를 구(求)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의 신선은 높은 산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이가 많고 적고의 차이도 없고,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도 없다. 현세에 내가 생각하는 神仙은 세속(世俗)에서 벗어나 스스로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앉아서 세상을 관조(觀照)하고 대자연의 품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선비의 모습이다. 그 평범함 속에 나 자신의 신선 또한 존재한다. 나 자신도 신선의 마음으로 대자연에 동화되어 즐거움을 얻는 참한 선비모습을 하고 자연 속에 앉아 있으면 그것이 곧 나의 신선놀음이고 그러니 내가 神仙이 되는 것이다. 즉 나의 신선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바둑의 경우는 멀리 산허리를 휘감은 운우풍경(雲雨風景)에 취하다 문득 신의 한 수를 두는 것이 신선의 바둑이고, 오직 판만을 집중해서 바라보다 묘수를 찾아 착점(着點)하여 승부를 가르는 것은 승부바둑이거나 일반적으로 수담(手談)을 나누는 친선바둑이다.
낚시에서는 찌는 보는 듯 아니 보는 듯 편안한 시선으로 산천을 두루 바라보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즐기는 것이 신선의 마음으로 하는 선비(=釣仙)의 낚시이고, 찌에만 집중하여 바라보다가 큰물고기나 마릿수를 낚아내면서 조과에만 치중하는 것이 어부(=釣卒)의 낚시다.
우리가 산이나 물을 찾아서 힐링을 하는 목적은 뇌의 소독이다. 여기에서 뇌소독이란 온갖 상념과 사상 그리고 고민으로부터 머리를 맑게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자연의 품인 숲이나 물가에 나가서 편안한 선비의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호흡하는 것이 뇌와 폐 소독을 잘하는 방법이다. 그러니 스스로가 선비의 모습으로 자연에 동화되어 신선놀음을 하듯 나와 내 주변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자연을 한아름 보듬어 가슴에 품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즉 대자연의 품속에 나가서 그 대자연을 한아름 가득 가슴에 품는 것이 나의 육신과 정신을 지키는 신선의 도에 도달하는 길(道)인 것이다.
노장사상(老莊思想)에는 無爲自然이있다. 근본은 우주 삼라만상이 자연 속에서 더하고 뺌이 없이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자연 속에서 평등한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것인데, 국어사전에는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라는 의미로 풀이가 되어있다.
그렇다. 자연은 무리하게 밟고 지나가는 내 발자국 하나도 원치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연을 무리해서 짓밟고, 파내고, 개척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훼손을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인간이 억겁(億劫)을 이어온 대자연의 순리를 역행하여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러다가 미래에는 대자연의 고통을 우리가 되돌려 받는 때가 꼭 올 것이다. 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과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만약 과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우리 모두는) 대자연 속에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자연 속에서 우리 인간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다만 대자연이 우리 인간을 품에 거두어주므로 존재하는 것. 그런 인간이 대자연에 함부로 손을 대서 無爲自然을 흐트러뜨리면 되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티끌 같은 존재임을 자각하고 대자연에 겸손해야 하고, 無爲自然을 지켜야 한다.
釣仙의 道는 無爲自然에 있다.
중국 낚시여행 시에 중국예술인화가협회 부주석이고 낚시를 즐기는 유경길화백이
화선지 전지를 펼쳐놓고 빗자루만한 붓을 들어 즉석에서 一筆 하여 선물해준 작품 <道>
(먼 길을 가리키는 仙人의 모습은 一筆로 써낸 서예 글씨 道 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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